[호이안 3박4일] 1일차 - 퇴근 후, 밤의 호이안에 스며들다

드디어, 드디어 간다. 베트남 호이안.

금요일 오후 6시. 마지막 커밋을 푸시하고 노트북을 덮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몇 주간 나를 괴롭히던 버그들, 쌓여있던 코드 리뷰 요청들... 이 모든 것과 잠시만 안녕이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아무 생각 안하기'. 집에 들러 미리 싸둔 캐리어를 끌고 공항 리무진에 몸을 실으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밤의 인천공항은 언제나 묘한 설렘을 준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구역에 들어서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 커피 한 잔을 사들고 탑승구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어쩌면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밤 비행기는 피곤하지만 낭만이 있다. 이륙 후 안정고도에 접어들자 창밖은 온통 칠흑같은 어둠 뿐. 영화 한 편을 볼까 하다 그냥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창밖으로 반짝이는 다낭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나 진짜 왔구나."

새벽의 다낭, 그리고 낯선 도시 호이안으로

"Ladies and Gentlemen, we have just landed at Da Nang International Airport."

비행기 문이 열리고, 한 발 내딛는 순간 후끈한 동남아 특유의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아, 이 냄새. 이 습도. 너무 그리웠다. 한국의 쌀쌀한 가을 공기와는 전혀 다른, 생명력 넘치는 공기.

미리 예약해둔 픽업 차량 기사님은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서글서글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늦은 새벽이라 텅 빈 도로를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40분쯤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하나둘씩 등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둠 속에서 따뜻한 빛을 내는 그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들지 못하고, 밤의 올드타운으로

솔직히 피곤해서 숙소에 도착하면 바로 뻗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창밖으로 아른거리는 등불의 주황빛이 "어서 나와봐" 하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잠깐만.. 딱 한 바퀴만 돌고 올까?" 이 유혹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짐만 대충 던져두고 카메라 하나만 챙겨서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갔다.

 

고요한 밤, 나 혼자 독차지한 올드타운 산책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낮에는 그렇게나 시끌벅적했을 거리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관광객들은 모두 사라지고, 가끔 오토바이 한두 대가 지나갈 뿐. 호이안의 올드타운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 등불들이 강물에 비쳐 일렁이는 풍경.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은 낡은 건물들의 질감. 코 끝을 스치는 향 냄새까지. 몇 시간 전까지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던 내가,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정말 비현실적인 풍경. 왜 다들 호이안, 호이안 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한참을 넋 놓고 걷다 보니 배가 슬슬 고파졌다. 원래 가려던 BBQ 맛집은 당연히 문을 닫았고, 대신 골목 어귀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노점을 발견했다. 메뉴판도 없는 곳이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쌀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받아든 쌀국수 한 그릇. 이름도 모르는 가게였지만,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은 그 어떤 미슐랭 맛집보다도 맛있게 느껴졌다. 시원한 현지 맥주, 라루(Larue) 한 병과 함께하니 완벽한 조합. 크으.

숙소로 돌아오는 길, 살짝 오른 취기에 기분이 좋았다.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이, 어떤 맛이,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릴까. 피곤함도 잊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이렇게 나의 호이안 3박 4일 여행의 첫날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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